이세진 스님 고문 받던 주정공장...4.3역사관으로 ‘탈바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3-13 12:04 조회1,280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4.3당시 관음사 전투에서 패배하고 귀순했던 이세진 스님이 감금되었던 주정공장 옛터에 4.3역사관이 오늘(13일) 문을 열었습니다.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은 당시 수용소 생활상과 수형인들의 아픈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전시와 추모관으로 조성됐습니다.
오늘 개관식에서 오영훈 지사는 “행불인들의 치유공간으로 마련됐다는 점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행불인 유족들의 아픔과 고통은 다른 유족들보도 크게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오 지사는 “오는 4.3추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의 참석을 거듭 요청한다”면서 “유족의 요청에 윤 대통령이 화답하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1949년 봄 선무공작에 의해 주정공장으로 하산하거나 잡혀들어온 주민들은 혹독한 고문으로 삶과 죽음 갈림길의 운명 현장이었다”고 주정공장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김 회장은 “주정공장의 주민들은 불법재판으로 전국 형무소로 강제 이송됐고, 한국전쟁 때에는 예비검속으로 다시 끌려와 돌에 묶인 채 제주 앞바다에 수장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세진 스님도 무장대가 관음사 전투에 패하면서 귀순했다가 주정공장에 감금되었습니다.
스님은 주정공장에서 잠시 풀려나 관음사포교당에 머물렀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예비검속에 다시 잡혀가 제주 앞바다에서 수장됐습니다.
한편 13살이던 4.3당시 관음사에 기거했던 광순 스님(명법사 주지)은 관음사 신도들과 이세진 스님을 면회 갔던 증언에 의하며 “주정공장에 끌려갔던 사람들은 취조받는 이들의 비명소리와 죽어나오는 시체 등으로 지옥과 다름없었다”고 회상한 바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